CA를 우주의 근본 구조와 연결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난제는 양자역학의 확률성이다.
고전적 CA에서는 현재 상태와 규칙을 알면 다음 상태가 결정된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동일한 조건으로 실험을 반복해도 측정 결과가 확률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확률은 우주 자체가 본질적으로 무작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더 근본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이 질문은 아인슈타인 이후 지금까지도 물리학의 중요한 논쟁 주제다.
1. 고전적 CA의 결정론과 계산적 비환원성
전통적인 CA의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현재 상태를 \(S_t\), 다음 상태를 결정하는 규칙을 \(F\)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현재 상태가 정해져 있고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다음 상태도 하나로 결정된다.
이것이 결정론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음 상태가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상태를 미리 쉽게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매우 복잡한 CA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 상태에서 1억 단계 뒤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 결과를 간단한 공식으로 바로 계산할 수 있을까?
일부 CA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에서는 실제로 수많은 계산 단계를 거쳐야만 미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울프럼은 이러한 성질을 계산적 비환원성이라고 설명했다.
이 개념은 우주론과 연결될 때 흥미로운 의미를 갖는다.
우주가 결정론적 계산 구조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존재하는 관찰자가 우주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 자체가 진행하는 계산을 따라가야만 미래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은 구분해야 한다.
2. 양자역학의 확률성과 아인슈타인의 문제 제기
양자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나 스핀과 같은 물리량을 측정하기 전까지 하나의 확정된 결과로만 기술하지 않는다. 여러 가능한 결과에 대응하는 확률진폭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수학적 표현이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파동함수의 시간 진화는 결정론적인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측정 결과는 보른 규칙(Born rule)에 따라 확률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어떤 양자상태가 측정 결과 A와 B가 나올 가능성을 함께 포함한다면, 측정 전에는 두 결과에 대응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개별 실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확률적으로 기술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근본적 확률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양자역학이 자연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며, 더 깊은 수준의 물리적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 알려진 표현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확률은 실제로 근본적인 것일까, 아니면 더 깊은 결정론적 구조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까?
3. 벨의 정리: 단순한 결정론으로는 양자확률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64년 존 벨(John Bell)의 정리다.
벨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양자역학의 예측을 모두 재현할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검토했다.
여기서 국소성이란 멀리 떨어진 두 지점 사이에 빛보다 빠른 물리적 영향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조건과 연결된다.
벨의 정리에 따르면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은 특정한 부등식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특정한 조건에서 그 부등식을 위반하는 예측을 한다.
이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고, 2015년에는 주요 허점들을 동시에 해결한 벨 부등식 위반 실험들이 발표되었다.
이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양자역학의 확률적 상관관계는 단순히 우리가 개별 입자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전적 확률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벨의 정리가 모든 결정론적 이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소성을 포기하는 결정론적 이론, 측정 설정과 숨은 변수 사이의 독립성 가정을 포기하는 초결정론적 접근 등은 논리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남긴다.
따라서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벨의 정리는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에 강한 제약을 가했지만, 모든 형태의 결정론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4. CA와 양자역학을 연결하려는 시도: 헤라르뒤스 토프트의 접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헤라르뒤스 토프트(Gerard ’t Hooft)는 양자역학의 배후에 결정론적 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그의 셀룰러 오토마타 해석(Cellular Automaton Interpretation, CAI)은 우주의 근본 상태가 고전적이고 결정론적인 정보 상태일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이 관점에서는 우리가 관찰하는 양자적 확률이 근본적인 무작위성 때문이 아니라, 관찰자가 더 깊은 미시적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날 가능성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상태는 이산적인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
각 상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다음 상태로 변화한다.
-
관찰자는 전체 미시상태를 알 수 없다.
-
관찰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현상을 기술한다.
-
그 결과 거시적인 관찰에서는 확률적인 법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양자역학을 부정하기보다는 양자역학이 왜 그런 확률 구조를 갖는지 더 깊은 수준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특히 벨의 정리와 양자얽힘, 보른 규칙을 실제로 재현해야 한다. 단순히 결정론적인 CA에서 무작위처럼 보이는 패턴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토프트의 CAI는 흥미로운 연구 방향이지만, 현재 양자역학을 대체하는 검증된 이론은 아니다.
5. 시간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제 CA를 우주론과 연결할 때 가장 흥미로운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시간은 우주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태의 변화가 반복되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전통적인 CA에서는 시간이 이미 정의되어 있다. 1단계, 2단계, 3단계처럼 계산의 순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를 근본적인 계산 구조로 설명하려면 시간 자체를 외부에서 주어진 값으로 가정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 가지 가능성은 시간의 본질을 사건의 순서에서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태 변화 A가 발생한 뒤 B가 발생하고, B가 다시 C를 유발한다면 A→B→C라는 인과적 순서가 형성된다.
이때 시간은 독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사건들의 변화 순서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 중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
사건: 정보 상태가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
-
인과관계: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발생 조건에 영향을 주는 관계.
-
시간의 방향: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방향.
-
시간의 누적: 변화의 순서가 축적되어 관찰 가능한 시간 척도를 형성하는 과정.
다만 사건의 순서만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모든 성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측정 단위, 시간의 방향성, 상대론적 시간 지연 등을 재현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의 창발은 유망한 연구 가설이지만, 완성된 이론은 아니다.
6.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시간이 사건의 순서에서 나타날 수 있다면 공간은 무엇에서 출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접근은 공간을 관계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정보 단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요소는 다른 요소와 직접 연결되어 있고, 어떤 요소는 여러 단계를 거쳐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 구조가 충분히 안정적이고 일정한 성질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거리와 위치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공간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빈 그릇이 아니라, 요소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구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울프럼의 하이퍼그래프 모델은 이러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고정된 격자 위에서 셀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 자체가 재작성 규칙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단순히 연결망을 만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3차원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공간을 설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의 차원이 나타나야 한다.
-
공간의 거리와 곡률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
빛과 물질의 전파가 적절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과 일치해야 한다.
-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물리적 법칙이 일관되게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공간의 창발은 단순한 연결 구조를 넘어 기하학과 상대론까지 설명해야 하는 문제다.
7. 온도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온도는 물질을 구성하는 개별 입자가 갖는 단순한 속성이 아니다. 온도는 수많은 입자의 운동과 에너지 분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거시적인 물리량이다.
고전적인 이상기체에서는 입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와 온도가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여기서 \(k_B\)는 볼츠만 상수이고, \(T\)는 절대온도다.
이 관계가 보여주는 것은 온도가 미시적인 운동 상태와 집단적인 통계적 성질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CA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가능하다.
격자 위에 입자를 배치하고 각 입자에 방향과 운동량, 에너지 정보를 부여한다. 입자들이 이동하고 충돌하는 규칙을 반복하면 전체 시스템의 에너지 분포가 만들어진다.
이 분포를 분석하면 온도에 대응하는 거시적 변수를 정의할 수 있다.
통계역학에서는 엔트로피와 온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엔트로피 \(S\)가 에너지 \(E\)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통해 온도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온도가 개별 셀의 상태가 아니라 전체 상태의 통계적 분포에서 도출된다는 것이다.
8. 압력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압력은 입자들이 벽이나 다른 입자와 충돌하면서 운동량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기체 분자들이 용기 벽에 부딪히면 벽에 힘을 가한다. 이 힘을 면적으로 나눈 것이 압력이다.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또는 입자 수 밀도 \(n=N/V\)를 사용하면 다음과 같다.

CA에서는 입자의 이동과 충돌 규칙을 정의하고, 일정한 영역에 입자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벽에 얼마나 자주 충돌하는지, 충돌할 때 운동량이 얼마나 전달되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 거시적인 압력과 밀도, 온도에 대응하는 변수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격자 기체 자동자 연구에서는 입자의 이동과 충돌 규칙을 통해 유체역학적 거동을 재현했다. 1986년 프리슈와 동료들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또한 1992~1993년 연구에서는 열적 요동과 밀도 상관관계 등 실제 유체와 비교할 수 있는 통계적 특성이 분석되었다.
이 점은 CA가 단순히 추상적인 계산 모델에 머물지 않고, 실제 물리적 거시 현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9. 가장 중요한 구분: 물리량을 재현하는 것과 물리량 자체를 도출하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현재의 LGA 연구는 이미 공간과 입자, 운동량과 에너지라는 개념을 정의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 국소적인 계산 규칙을 통해 유체의 흐름과 온도, 압력 등의 거시적 성질을 재현한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계산적 우주론은 한 단계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간과 입자, 운동량과 에너지라는 개념 자체도 정보의 관계와 상태 변화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가장 근본적인 정보 상태가 존재한다.
-
정보 상태 사이에 국소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
관계의 변화가 반복되면서 인과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
인과적 구조가 누적되면서 시간의 개념이 나타난다.
-
정보 요소 사이의 연결망이 공간적 구조로 해석된다.
-
안정적인 정보 패턴이 입자와 물질에 대응할 수 있다.
-
상태 변화의 통계적 분포에서 에너지와 온도, 압력에 대응하는 거시적 물리량이 나타난다.
이 모델은 현재 검증된 물리학 이론이 아니라, 연구를 체계화하기 위한 가설적 구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접근이 기존의 물리학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CA와 LGA는 이미 국소 규칙에서 거시적 물리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 CA는 이산적인 구조에서 유니터리 양자 진화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여러 성과를 하나의 일관된 이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제3편의 결론: 우주는 계산하고 있는가?
CA를 우주의 근본 구조와 연결하면 몇 가지 핵심 질문이 남는다.
첫째,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상태는 결정론적인가, 확률적인가?
둘째, 양자역학의 확률은 근본적인 무작위성인가, 아니면 더 깊은 정보 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셋째, 시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건들의 인과적 순서에서 만들어지는가?
넷째, 공간은 처음부터 주어진 배경인가, 아니면 정보 요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구조인가?
다섯째, 온도와 압력 같은 거시적 물리량은 미시적인 정보 상태의 통계적 성질에서 도출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서로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정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물질과 에너지가 그 관계의 안정된 패턴으로 나타나며, 온도와 압력이 집단적인 상태 변화의 통계적 성질로 나타난다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계산적 과정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양자역학의 보른 규칙과 벨 부등식, 상대론적 시공간을 하나의 모델에서 재현해야 한다.
그럼에도 CA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통찰은 분명하다.
복잡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복잡한 출발점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아주 단순한 규칙과 관계의 반복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물질이 아니라 정보와 관계, 그리고 변화의 규칙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그 계산 과정이 만들어 낸 거시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셀룰러 오토마타를 통해 탐색할 수 있는 계산적 우주론의 가장 흥미로운 가능성이다.
주요 참고문헌
-
Bell, J. S. (1964). On the Einstein Podolsky Rosen Paradox. Physics Physique Fizika, 1, 195–200.
-
Clauser, J. F., Horne, M. A., Shimony, A. & Holt, R. A. (1969). Proposed Experiment to Test Local Hidden-Variable Theories. Physical Review Letters, 23, 880–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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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ner, N. et al. (2014). Bell Nonlocality. Reviews of Modern Physics, 86, 419–478.
-
’t Hooft, G. (2014). The Cellular Automaton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
Frisch, U., Hasslacher, B. & Pomeau, Y. (1986). Lattice-Gas Automata for the Navier-Stokes Equation. Physical Review Letters, 56, 1505–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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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sfils, P. et al. (1992). Spontaneous Fluctuation Correlations in Thermal Lattice-Gas Automata. Physical Review Letters, 68, 1077–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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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sfils, P. et al. (1993). Statistical Hydrodynamics of Lattice-Gas Automata. Physical Review E, 48, 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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