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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밀집지역에 대한 공격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제노사이드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과거 독일이 유대인을 집단학살하면서 피해자 입장이었던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반대로 가해자가 된 상황입니다.
과거 제노사이드와 관련한 여러 사건과 더불어 개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집단 살해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편집]
集團殺害 / Genocide
제노사이드(genocide)는 천부적 혹은 사회적 요소를 들어 특정 인류 집단을 고의적 및 제도적으로 말살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시도를 일컫는다.
폴란드 출신 법학자 라파우 렘킨(Rafał Lemkin, Raphael Lemkin, 1900–1959)[1]에 의해 20세기 중반에 정립된 개념이다. 그리스어로 인종을 뜻하는 Genos와 살해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Caedo, Caedare[2]의 합성어로서 주로 '집단 살해'라고 번역된다. 1944년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오스만 제국에서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영향을 받아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고 1948년에 일반적인 학살과는 구분되는 일종의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립되었다. 다만 학계나 교육계 등에서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용어로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전반이다.
주로 특정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적 행동을 가리킨다. 그 주체는 정부나 정규군일 수도 있으나 민병대와 같은 자생적인 점조직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도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의도로, 의도가 있다면 집단의 '절멸' 이외에도 '민족적 거세'라는 제한 목표를 설정하여 집단 성폭행을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경우나 문화적 탄압 행위 등도 제노사이드로 판단될 수 있다.
이러한 집단 살해의 예시는 고대에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파괴,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횡행, 고도의 산업력과 행정력을 가진 국민국가(Nation State)의 등장, 그리고 과학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인해 집단 살해가 더 자주, 더 대규모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벌인 홀로코스트가 악명 높아 제노사이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으며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산업화, 체계화된 학살'이라는 특성에 있어 현대적 의미의 제노사이드가 정의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종전 후 집단살해 범죄를 정의하고 방지하기 위해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CPPCG)'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도 1950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으며 1995년에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단체에게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단, 위에서 언급한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을 제외한 집단의 학살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저 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해당 협약의 범주를 굳이 저 4개 집단으로 한정짓지 말자는 학설도 존재하고 국제사회에는 꼭 제노사이드가 아니라도 대량 학살, 대규모 인권 탄압, 전쟁범죄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수없이 많다.
여담으로 통치 집단의 이념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대규모 학살[3]은 킬링필드[4] 정도를 제외하면 제노사이드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1. 관련 법령[편집]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5]
채택일 1948. 12. 9 / 발효일 1951. 1. 12 / 당사국 수 132 / 대한민국 적용일 1951. 12. 12 체약국은 집단살해는 국제연합의 정신과 목적에 반하며 또한 문명세계에서 죄악으로 단정한 국제법상의 범죄라고 국제연합 총회가 1947년 12월 11일부 결의 96(1)에서 행한 선언을 고려하고, 역사상의 모든 시기에서 집단살해가 인류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음을 인지하고, 인류를 이와 같은 고뇌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는 국제협력이 필요함을 확신하고, 이에 하기에 규정된 바와 같이 동의한다. 제1조 체약국은 집단살해가 평시에 행하여졌든가 전시에 행하여졌든가를 불문하고 이것을 방지하고 처벌할 것을 약속하는 국제법상의 범죄임을 확인한다. 제2조 본 협약에서 집단살해라 함은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서 행하여진 아래의 행위를 말한다. (a) 집단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b) 집단구성원에 대하여 중대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 (c)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육체적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 의도된 생활조건을 집단에게 고의로 과하는 것 (d) 집단 내에 있어서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하여 의도된 조치를 과하는 것 (e) 집단의 아동을 강제적으로 타 집단에 이동시키는 것 제3조 다음의 제 행위는 이를 처벌한다.
(a) 집단살해
(b) 집단살해를 범하기 위한 공모 (c) 집단살해를 범하기 위한 직접 또는 공연한 교사 (d) 집단살해의 미수 (e) 집단살해의 공범 제4조 집단살해 또는 제3조에 열거된 기타 행위의 어떤 것이라도 이를 범하는 자는 헌법상으로 책임있는 통치자이거나 공무원 또는 사인이거나를 불문하고 처벌한다.
제5조 체약국은 각자의 헌법에 따라서 본 협약의 규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특히 집단살해 또는 제3조에 열거된 기타의 행위의 어떤 것에 대하여도 죄가 있는 자에 대한 유효한 형벌을 규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입법을 제정할 것을 약속한다. 제6조 집단살해 또는 제3조에 열거된 기타 행위의 어떤 것이라도 이로 인하여 고소된 자는 행위가 그 영토 내에서 범행된 국가의 당해재판소에 의하여 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을 수락하는 체약국에 관하여 관할권을 가지는 동재판소에 의하여 심리된다. 제7조 집단살해 또는 제3조에 열거된 기타 행위는 범죄인 인도의 목적으로 정치적 범죄로 인정치 않는다. 체약국은 이러한 경우에 실시 중인 법률 또는 조약에 따라서 범죄인 인도를 허가할 것을 서약한다. (후략) |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법률 제10577호, 2011.4.12. 제8조 (집단살해죄) ① 국민적·인종적·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 자체를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목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1항과 같은 목적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 제1항의 집단의 구성원에 대하여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危害)를 끼치는 행위 2. 신체의 파괴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계획된 생활조건을 제1항의 집단에 고의적으로 부과하는 행위 3. 제1항의 집단 내 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부과하는 행위 4. 제1항의 집단의 아동을 강제로 다른 집단으로 이주하도록 하는 행위 ③ 제2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제1항에서 정한 형에 처한다. ④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선동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 또는 제2항에 규정된 죄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
1.2. 심리[편집]
당연히 사람들은 맨 정신으로는 다른 사람을 집단으로 학살하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는 배경에는 거의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있었다. 제노사이드는 이 어려움의 책임을 돌릴 다른 집단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을 제노사이드로 몰고 가는 심리의 중심엔 타자화 (우리와 그들로 나눔)와 비인격화 (상대를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가 있다.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우릴 먼저 죽일 것이라는 공포와 혐오를 심어주어 거대한 증오범죄를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제노사이드로 몰고 가는 심리의 중심엔 타자화 (우리와 그들로 나눔)와 비인격화 (상대를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가 있다.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우릴 먼저 죽일 것이라는 공포와 혐오를 심어주어 거대한 증오범죄를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1.3. 학살과의 차이[편집]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 사건의 분류 과정에서는 권위 있는 인권단체, 관련학자, 전문기관의 판정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살 사건들은 제노사이드의 사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권위 있는 단체 및 기관으로 인정되는 곳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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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기관
1.4. 사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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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포에니 전쟁(BC149~BC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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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노 학살(1492~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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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원정(1833~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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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피 학살(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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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케스 대학살(1800~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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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크남 학살(1880-1910) - 칠레 정부가 셀크남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건. 이 학살 이후 순수한 셀크남인들은 단 한 명도 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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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디예 학살(1894~1896) - 훗날 일어나게 될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예고편격인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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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 대학살(1915~1917) - 오스만 제국의 청년 튀르크당이 20세기 초반에 자국의 소수민족 기독교 신자인 아르메니아인에게 행한 제노사이드. 하지만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오스만 제국은 종교적으로 벌인 게 아니라 무슬림인 아랍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 등에게도 제노사이드를 가했다. 근대의 대표적인 제노사이드로 50만명 이상의 아랍인, 750,000명의 아시리아인, 900,000명의 그리스인, 1,500,0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참으로 조직화된 목적을 가지고 학살당했다.[6] 아르메니아인만 죽인 게 아니라고 아랍권 등에서 분노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란 이름부터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오스만 말기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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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대학살(1914~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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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대학살(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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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타타르족 추방(1944~1948) - 크림 타타르족을 경계한 스탈린의 지시로 크림 타타르족을 강제 추방하고 반발하는 이들은 학살한 사건. 이후 크림 타타르족에게 강제 동화정책을 펼쳤으며 해당 사건으로 최소 3만명에서 최대 10만명 가량의 사망자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학자 노먼 네이마크와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캐나다 정부는 이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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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VD의 폴란드 내 작전(1937~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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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총독부 기간 동안의 나치 독일 통치(1939~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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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아이티 학살(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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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학살(1954~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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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뉴기니 학살(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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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학살(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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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수용소(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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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브레니차 학살(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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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전쟁(1998~1999) - 알바니아인이 다수인 코소보 지역이 세르비아에게서 독립하려고 하자 일어난 여러가지 학살들. 다만 서방의 뒤늦은 개입과 외교적 오판으로 수많은 보슈냐크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을 초반부터 저지하지 못했던 보스니아 전쟁과 달리 이 쪽은 NATO가 신속하게 개입하여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2007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제노사이드방지협약에서 규정한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면서 세르비아가 직접 제노사이드를 자행하지는 않았으나 보스니아 내부의 친세르비아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제노사이드를 방지(prevent)할 협약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 국제사법재판소가 제노사이드방지협약을 적용해 의무 위반을 판단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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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학살(199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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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지디족 학살(20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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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년 12월 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제노사이드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2024년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남아공의 임시처분의 신청을 판단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행위가 제노사이드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이스라엘에 대해 모든 제노사이드방지협약 위반 행위를 방지하고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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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슬리 학살(1937) - 치바오 지역과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국경 내외의 아이티인들을 학살한 사건. 도미니카는 이전부터 아이티의 식민 지배를 받아 왔고 그 과정에서 모카 참수 등 도미니카인 학살이 따랐던 터라 아이티에 대한 국민 감정이 대단히 나빠져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이티인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불법 월경 및 약탈을 저지른다는 풍문이 들리자 당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가 결국 학살 명령을 내려 도미니카 공화국군이 아이티 국경에 파견되어 최대 35000여명의 아이티인이 사망했다. 하필 파슬리 학살인 이유는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군 측에서 아이티인과 도미니카 흑인을 가려내기 위해 단어 파슬리(Persil)을 스페인어로 말해보도록 시켜서 발음이 부정확한 이들은 아이티인으로 간주하고 처형했다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이다. 정작 본국인 아이티에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미국과 함께 겨우 나서서 보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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