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리고 진공
그녀가 보인다
둥근 얼굴의 그녀가 보인다
누워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본다
둥근 그녀는 각진 그녀보다
항상 가깝게 느껴진다
둥근 그녀가 마음을 더 열어서 그런 것인지
내가 마음을 더 연 것인지
누워서 그녀를 보는게 좋다
살빠져 각진 그녀에겐
오히려 내가 뭐라 위안을 줘야할 듯
둥근 그녀에게서 나는 위안을 받는다
마음이 저절로 열린다
누워 맞이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편안하다
눈 감으면 그녀는 이내 사리지고
머리 속에서만 흐리게 보인다
다시 눈 뜨면 여전히
위에서 나를 바라 보고 있자나
이곳과 그녀 사이는 무척 멀다
우주에서 보면 붙은 것과 같지만
내게는 멀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눈 앞에 있다
그녀와 나 사이 드넓은 진공은
어디로 간거야
진공은 진공이 된다
그래서 진공인가
눈 뜨면 바로 손으로
잡을 수 있을거만 같다
진공은
드넓은 진공은 없어졌다
그녀와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누워 있고 그녀는 위에 떠있다
나와 그녀는 그냥 마주 보고 있다
그녀는 아래에 누워 있고
나는 위에 누워있다
그녀는 아무런 힘을 못 느낀다
나도 아무런 저항을 느낄 수 없다
서로 누워 있을 뿐
서로 마주 보며 누워 있다
누가 아래에 누워 있고
누가 위에 누워 있는가
아래에서 위에서 동시에 누워서
아무런 저항없이
바주 볼 수 있는가
진공이다
위 아래는 의미 없구나
나와 그녀만 있을 뿐
내가 없어도 그녀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없으면 그녀도 없다
난 지구를 등에지고 그녀를 마주하고
그녀는 그녀를 등에지고 나를 마주한다
작은 떨림을 끊임 업이 일으키며
원을 그린다
추울 땐 가까이서
더울 땐 멀리서
원을 그린다
어지럽지 않다
원이 느껴지지 않는다
늘 그녀와 내가 마주할 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의 우주
그녀와 내가 마주 보고 있다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나와 그녀의 무게감은 공이다
누가 더 무겁고
누가 덜 무거운지
공만 있을 뿐
모두 느낄 수 없다
모두 공이다
진공은 넓지만
진공이 사라진 공간은
진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