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SpTgewHq962pXzEyV4Mf4r6f6X_bIFNsQ5eOScoRWBA 제야의 종 유래/천문학적,불교적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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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 유래/천문학적,불교적 의미들

by upiter67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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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보신각 동종

 

원래 '제야(除夜)의 종'은 제석(除夕) 또는 대회일(大晦日)에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각 사찰에서 108번의 타종을 하던 불교식 행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야 또는 제석은 '섣달 그믐날 밤(음력 12월 30일경)' 어둠을 걷어내는 것,

즉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양력으로 12월 31일에 행해진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보신각종 타종은 조선 초 태조 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기 위해 하루 두 번 종을 쳐 온데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보신각은 오늘날의 인사동 입구에 '종각'이라는 명칭으로 세워져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는 새벽 4시경(오경)과 밤 10시경(이경)

하루 두 차례 종을 쳐 주민의 통행금지 해제와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경에는 28번의 종을 치고 인정(人定, 또는 인경)이라 하였는데,

이는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이십팔수)에 밤 사이의 안녕을 기원한 것입니다.

하늘의 적도를 따라 남북에 있는 별들을 28개로 구획으로 구분한 별자리입니다.

28수는 편의상 7개씩 묶어서 4개의 7사(舍)로 구별하여

각각 동 · 서 · 남 · 북을 상징하도록 하였는데, 이 4개의 7사에 속하는 별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동방 7사:28수 중 춘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각수(角宿)를 필두로 하여 시간이 경과되면 차례로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오는 항(亢) · 저(氐) · 방(房) · 심(心) · 미(尾) · 기(箕) 등 7개의 수가 차지하는 성수(星宿)들을 말합니다.

② 북방 7사:28수 중 하짓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두수(斗宿)를 필두로 하여 시간이 경과되면 차례로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오는 우(牛) · 여(女) · 허(虛) · 위(危) · 실(室) · 벽(壁) 등 7개의 수가 차지하는 성수들을 말합니다.

③ 서방 7사:28수 중 추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규수(奎宿)를 필두로 하여 시간이 경과되면 차례로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오는 루(婁) · 위(胃) · 묘(昴) · 필(畢) · 자(觜) · 삼(參) 등 7개의 수가 차지하는 성수들을 말합니다.

④ 남방 7사:28수 중 동짓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정수(井宿)를 필두로 하여 시간이 경과되면 차례로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오는 귀(鬼) · 유(柳) · 성(星) · 장(張) · 익(翼) · 진(軫) 등 7개의 수가 차지하는 성수들을 말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십팔수 [二十八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리고 오경에는 33번의 종을 치고 파루(罷漏)라고 하였는데,

이는 불교에서의 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天)에게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무병장수, 평안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33천이라는 것은 도리천의 다른 이름입니다.

숫자 33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Trayastrimsa의 음을 옮긴 것이 도리입니다.

수미산 정상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마다 천인(天人)들이 사는 8개의 천성(天城)이 있다. 중앙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궁전인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쳐 총 33개의 천궁(天宮)이 있다. 그래서 도리천을 '33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도리'는 33의 음사(音寫)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한다. 즉 '33천'이라는 인도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번역한 것이 '도리천'인 것이다. 또 여기서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33천인 도리천은 33명의 신(神)이 사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도리천의 개념은 단순히 불교의 세계관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화 곳곳에 녹아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신라 시대 선덕여왕이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 때문에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경주의 첨성대가 천문관측기구로 불교의 수미산 개념을 적용해 만들어진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조선 시대 때 과거시험의 문과 합격자 정원을 33명으로 했으며, 항일 운동 시기 기미독립선언서를 33명의 민족대표가 모여 서명하고 낭독했던 것 등 도리천(33천)의 개념과 의미를 담은 것이 많다.

 

 

하지만 1895년(고종 32년) '종각'에서 '보신각'이라는 명칭으로 바뀌되면서

정오와 자정에 타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1908년 4월부터는 포(砲)를 쏘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한편, 태조 때 주조된 종루는 1413년 종로 4거리로 옮겨졌고,

1468년 세조 때 새로 주조되었다.

새로 주조된 원래의 보신각종(보물 제2호)은 임진왜란과 6ㆍ25전쟁 때

화재로 인해 원래의 모습과 음향이 많이 손상되어

1985년까지만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국민의 성금에 의하여 새로 주조된 종이다.

이 종은 1985년 8월 14일 보신각에 걸렸고, 8월 15일 광복절에 처음 타종되었다.

우리나라에 '제야의 종'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던 1929년,

일본 경성방송국이 특별기획으로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를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이 시초였다.

당시에 사용된 종은 일본인 사찰 동본원사에서 빌려와 타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매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새해맞이 행사로 정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야의 종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